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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 시사] "환승에 지친 베를린" 에미레이트 항공은 왜 BER 공항에 못 들어올까?

부지런한나무늘보 2026. 6. 21.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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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층 분석] 베를린 BER 공항은 왜 장거리 노선의 사각지대가 되었나: 에미레이트 항공 취항을 둘러싼 '브루탈로 로비전'

1. "우리는 반드시 베를린에 간다" – 팀 클락 에미레이트 회장의 선언

나무 패널 벽과 부드러운 카펫이 깔린 베를린 아들론 호텔(Hotel Adlon)의 '린덴치머(Lindenzimmer)'는 마치 영국 신사의 저택을 연상시키는 고급스러운 공간이었습니다. 2026년 6월 9일, 이곳에서 대영제국 훈장(KCEB)을 수훈한 에미레이트 항공의 76세 베테랑 수장, Sir Timothy Charles Clark(팀 클락) 회장의 기자회견이 열렸습니다.

 

그의 앞에는 접힌 서랍장과 빈 접시가 놓여 있었고, 중동의 지정학적 위기 속에서도 에미레이트가 잘 버티고 있다는 점을 담담하게 설명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수십 년간 독일 시장에서 교두보를 넓히지 못했던 '베를린 취항 문제'로 화두가 전환되자, 그의 목소리 톤은 한층 높아졌습니다.

"우리는 베를린에 올 것입니다. 우리는 단호하며, 반드시 성공할 것입니다. 이번에는 연방정부 역시 해결 방법을 찾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은퇴를 앞둔 이 노전사는 단순한 비즈니스를 넘어 자신의 마지막 이정표를 세우려는 투사처럼 보였습니다. 과연 이번에는 베를린이 그토록 갈망하던 두바이 직항 노선을 따낼 수 있을지, 아니면 또다시 오만함 속에 무산되며 '항공 교통의 막다른 골목'으로 남게 될지 국제 항공업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습니다.

 

2. "독일은 베를린을 방치하고 있다" – 베를린 관광청장의 고발

"현재 베를린은 마치 바람이 불지 않아 멈춰 선 돛단배와 같습니다."

 

2009년부터 베를린의 글로벌 마케팅을 이끌어온 주정부 소유 'Visit Berlin'의 부르크하르트 키커(Burkhard Kieker) 대표는 2026년 6월 말 퇴임을 앞두고 씁쓸한 현실을 털어놓았습니다. 그는 직전 밤에도 루프트한자를 이용해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독일로 귀국했지만, 베를린 직항이 없어 프랑크푸르트에서 지루한 환승 대기 시간을 거쳐야 했습니다. 매일 수천 명의 베를린 시민들이 프랑크푸르트, 뮌헨, 파리, 런던 등 타국 공항 환승 구역에서 피로에 지친 채 겪고 있는 일상입니다.

 

키커 대표는 "베를린은 유럽 최대 경제 대국의 수도이자 370만 명의 인구를 가진 대도시임에도, 전 세계 전 세계 메트로폴리탄 중 장거리 직항 노선 인프라가 이토록 처참한 곳은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에미레이트 항공의 취항은 정체된 베를린 경제에 엄청난 활력소가 될 것이라는 게 그의 주장입니다.

 

물론 하이난 항공(베이징), 카타르 항공(도하), 유나이티드·델타(뉴욕), 에어 트랜셋(토론토), 에어 캐나다(7월 몬트리올 취항) 등의 직항 노선이 있고, 가을부터 유로윙스, 콘도르 등이 중동 노선을 추가하지만, 과거 베를린이 가졌던 위상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합니다.

  • 1964년: 팬암(Pan Am)이 베를린 테겔-뉴욕 노선을 첫 운항하며 세계를 놀라게 함.
  • 동독 시절: Schönefeld 공항을 통해 동독 국적기인 인터플루크(Interflug) 등이 하노이, 바그다드, 베이루트, 카이로, 알제, 바마코 등 아시아와 아프리카를 직접 연결함.
  • 2017년 이전: '에어 베를린(Air Berlin)'이 테겔 공항을 허브로 삼아 22개 이상의 연계 노선을 운영하며 시카고, 로스앤젤레스, 사방, 마이애미, 포트마이어스 등으로 직항을 띄웠으나 파산하며 모두 공중분해 됨.

그 결과, 2019년 테겔과 셰네펠트 공항을 합쳐 3,560만 명에 달했던 연간 여객 수는 지난해 BER 공항에서 2,600만 명으로 쪼그라들었습니다. 베를린은 유럽 내에서 코로나19 이전 여객 수요를 회복하지 못하고 전국의 평균 성장률보다도 뒤처지는 몇 안 되는 도시 중 하나입니다.

 

3. 데이터가 보여주는 숨은 수요: "환승객만 수만 명"

독일 사회민주당(SPD)의 세바스티안 슐레셀부르크(Sebastian Schlüsselburg) 의원이 이끄는 의원단이 주정부 교통부를 통해 BER 공항의 'Intercontinental(대륙 간) 잠재 여객 수요'를 조사한 결과는 매우 충격적이었습니다. 직항 노선이 없어서 2025년 한 해 동안 타 공항에서 경유해 이동한 베를린발 목적지별 실제 환승객 수는 다음과 같습니다.

  • 1위 방콕: 64,182명 (매일 직항 대형기를 띄워도 남는 수치)
  • 2위 뉴욕(JFK): 42,670명
  • 3위 상파울루: 32,519명 (주 3회 이상 직항 가능 규모)
  • 4위 로스앤젤레스: 31,638명 (주 3회 이상 직항 가능 규모)
  • 5위 하노이: 30,897명 (주 3회 이상 직항 가능 규모)
  • 뒤이어 싱가포르, 샌프란시스코, 시카고, 워싱턴, 델리, 도쿄, 서울, 푸켓 등이 막대한 환승 여객을 기록했습니다.

슐레셀부르크 의원은 "직항이 생기면 이 수요는 몇 배로 더 늘어날 것"이라며, 직항 부족으로 인해 베를린의 핵심 산업인 마이스(MICE, 전시·컨벤션) 및 관광업계가 타격을 입어 대형 호텔들이 일자리를 줄이고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전직 기장이었던 토마스 캐거 역시 "현재 BER 공항은 루마니아 클루지나 티미쇼아라 같은 3류 노선만 유치하며 '동유럽용 전용 공항'으로 변질되고 있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습니다.

 

4. 구조적 한계와 과거의 치명적 실수

베를린이 이러한 항공 Sackgasse(막다른 골목)가 된 데는 역사적 배경과 실책이 얽혀 있습니다.

 

항공 전문가 하인리히 그로스봉하르트(Heinrich Großbongardt)에 따르면, 1989년 장벽이 무너진 직후 베를린이 독일의 제3의 항공 허브로 도약할 결정적인 기회가 있었습니다. 당시 베를린-브란덴부르크 공항공사 회장이었던 하인츠 루나우(전 루프트한자 CEO)는 베를린 남쪽의 슈페렌베르크(Sperenberg) 부지에 24시간 야간 통행 금지 없이 상시 운영이 가능한 대형 신공항 건설을 강력히 추진했습니다.

 

그러나 마티아스 비스만 연방 교통부 장관과 에버하르트 디프겐 베를린 시장(둘 다 CDU)이 이를 묵살하고, 기존 동독 시절의 셰네펠트 부지를 확장하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이 결정으로 현재의 BER 공항은 '야간 비행 금지(Nachtflugverbot)'라는 치명적인 족쇄를 차게 되었고, 루프트한자가 1990년대 중반에 제2의 허브 공항으로 베를린이 아닌 뮌헨을 선택하면서 베를린은 허브 경쟁에서 영원히 탈락했습니다.

 

여기에 베를린이 문화·정치적 중심지일 뿐, 프랑크푸르트나 뮌헨 같은 대기업 및 금융 인프라가 부족하여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비즈니스 출장객(Geschäftsreisende)'의 절대적인 숫자가 부족하고, 주민들의 평균 소득이 낮아 장거리 여행 빈도가 떨어진다는 구조적 한계도 존재합니다.

 

5. "브루탈로 로비(Brutalo-Lobbying)"와 루프트한자의 방어벽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미레이트 같은 글로벌 항공사가 자발적으로 들어오겠다는 것마저 막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업계 관계자들은 이를 바이에른주, 헤센주, 그리고 루프트한자가 결탁한 '브루탈로 로비(과격한 로비전)' 때문이라고 단언합니다. 이들은 자신들의 뮌헨 공항과 프랑크푸르트 공항의 허브 독점권을 지키기 위해 베를린을 철저히 배제하고 있습니다.

 

항공 전문가 안드레아스 슈페트(Andreas Spaeth)는 "루프트한자는 이미 민영화된 일반 상장기업임에도 불구하고, 역대 연방 교통부 장관들은 마치 루프트한자를 보호하는 것이 국가의 최대 의무인 양 철저한 보호주의(Protektionismus)로 일관하고 있다"며 현재 독일 정부가 걸프국 항공사들의 취항지 개수를 4곳으로 제한하는 독소 조항을 유지하는 이유를 꼬집었습니다.

🦅 루프트한자의 정면 반박: "독일은 세계에서 가장 자유로운 항공 시장이다. 에미레이트 항공이 베를린에 그렇게 오고 싶다면 기존 독일 취항지 4곳 중 한 곳을 포기하고 들어오면 된다. 걸프국 항공사들은 정부의 비호 아래 낮은 노동 기준, 기후 보호 규정 면제 등 불공정 경쟁을 펼치고 있다. 특히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우리는 러시아 영공을 우회하느라 엄청난 손해를 보고 있는데, 에미레이트는 러시아 노선을 증편하며 이득을 취하고 있지 않으냐"

반면, 비평가들은 BER 공항 자체의 높은 이용 수수료를 낮추고 공항을 민영화하는 등의 자구책 없이 감정적인 읍소만 하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합니다.

 

6. 결론: 프레시티지 싸움으로 번진 외교전

에미레이트 항공의 팀 클락 회장이 베를린 취항에 이토록 집착하는 것에 대해, 전문가 안드레아스 슈페트는 "사실 에미레이트 전체 매출에서 베를린 노선이 차지하는 비중은 미미하다. 이제 이것은 비즈니스를 넘어선 자존심과 자부심(Prestige)이 걸린 싸움이 되었다"고 분석합니다.

 

현재 아랍에미리트(UAE) 정부가 독일 연방정부에 공식 서한을 보내는 등 외교적 채널의 라인은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으며, 다행히 현 연방 총리실 내부에는 과거보다 다소 전향적인 태도를 보이는 대화 상대들이 매칭되어 물밑 협상이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수도 베를린을 항공 Sackgasse(막다른 골목)에서 구출하기 위한 이 거대한 항공 정치의 결과가 어떻게 귀결될지, 독일과 중동 항공업계의 시선이 베를린 아들론 호텔의 빈 접시 위로 모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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